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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西山大師)"해탈시(解脫詩)"인생(人生)

영월🏕김삿갓부동산 2021. 1. 13. 19:33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입적하기 직전 읊은 해탈(解脫) 詩

 

근심 걱정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 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 소리 치지말고

명예 얻었다고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에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소.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 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 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요.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깜깜한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겠소

살다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게 있소

기쁜 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없어짐이오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것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죽고 살고 오고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 입적하기 직전 읊은 해탈시-

 

서산대사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생을 마치고 열반에 들기 전에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해탈(解脫)" 이라는 시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조용히 명상(冥想)하는 마음으로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하여 옮겨 본다.

서산대사는 1520년에 평안도안주 지역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스승이며, 처음 이름은 "여신(汝信)" 으로 '너를 믿는 다' 는 뜻의 이름을 지어 불렀는데 세 살 되던 해에 꿈속에서 어떤 노인이 나타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 하라고 알려주어서 아명은 "운학"으로 바꾸게 되었다 한다.

자(字)는 현응(玄應)이라 하였으며, 호(號)는 청허(淸虛)이니 청허스님 이라 불렀으며, 별호는 백화도인(白華道人)으로, 풍악산인(楓嶽山人)으로, 두류산인(頭流山人)으로, 묘향산인(妙香山人)으로, 조계퇴은(曹溪退隱)으로 병로(病老),로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 졌으며, 묘향산 서쪽 산에서 은거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대사로 많이 알려 졌으나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열 살 때는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니 돌볼 사람이 없는 고아가 된 운학은 태어난 안주지역의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의 주선으로 서울로 옮겨와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을 배우고 무예와 병법을 배웠으며, 지리산의 화엄동과 칠불 동에서 영관대사의 설법을 듣고, 화엄경, 원각경, 능엄경, 유마경, 반야경, 법화경의 깊은 진리를 탐구하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금강산, 두류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에서 깊은 학문을 깨달았으며 시에도 능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임금은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을 가면서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 휴정에게 사신을 보내어 나라가 위급함을 알렸다.

이 때 이미 73세나 된 노승 서산대사가 달려오자 선조임금은 나라구할 방도를 물었고, 서산대사는 '늙고 병들어서 싸움터에 나가지 못할 승려는 온힘을 다해 절을 지키면서 나라를 구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도록 하고, 거동할 수 있는 승려는 자신이 직접 통솔하여 전쟁터로 나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였다.

한편으로 서산대사는 전국 사찰에 격문을 돌리니 처영(處英)은 전라도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휘하들을 통솔하고 권율(權慄)장군휘하에 들어가 활동하고,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 은 금강산에서 궐기하여 1000여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출전하였고, 서산대사도 1500여명의 승군을 모아 명나라 지원군과 협력하여 평양을 탈환하는 전공을 올렸다.

1604년 1월 묘향산에서 설법을 마치고 앉은 자세로 85세를 일기로 '해탈'이라는 시(詩)를 남기고 입적하여 열반에 들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멀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