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본명:김병연] 초상화
竹詩 - 죽시 대나무 金炳淵 (김병연):김삿갓 1807~1863 [방랑 생활중 사회풍자 와 해학이 담긴 詩를 지음]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랑타죽-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 반반죽죽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부피죽- 옳으면 옳은 대로 그르면 그른 대로 저대로 맡기리라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은 시세대로 하세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온갖 일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지나세
김 삿갓 의본명 은김병연 이다강원도 영월사람이며 당시의명문대가 안동김씨이다김병 연은5세때부터글을 배우기시작하여10세 전후에이미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시서와사서를 닥치는대로섭렵했다특히역 사에각별한흥미를느껴모르는 글이없었다병연은본시글공부만 좋아했지공명심이나출세욕같은데 는별로관심이없어과거에도응하지않 고있었다때는1826년(순조 32년)으로조 선의국운은이미서산으로기울어지고있었 으며각지에서는민란이끊이지않았다안동김 씨의세도정치하에매관매직이노골적이고돈과 빽이없는사람은능력이있어도관가에나갈수없는 시절이었다어머니 이씨는 자식의 능력이 아깝고안 타까워 영월 고을에 백일장을 보인다는 소문을 듣고 간곡하게 응시해 보도록 부탁한다. 백일장은 과거와 달 라 장원급제를 해도 벼슬을 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런시 험을 무엇 하러 봅니까?" 네 학문이 어느 정도인지 이 애미는 알고 싶어 그런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병 연은 백일장에 응시한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가산 군수정 시는 문관이면서도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는데 선천 방어 사 김익순은 무관이면서도 반란군에게 즉석에서 항복해 버렸다. 그런까 닭에 정부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난 뒤 김익순을 역적이라는 낙인을 찍어참 형에 처해 버렸다. 그 당시 그와 같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날 백일장의 시제는 그 사실(史實)을 갖고 시를 지어 올리라는 것이었다. 병연은 그 시제를 보는 순간 형용하기 어려운 충격심이 솟구쳐 올랐다. 평소에도 김익순을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왔기 때문이다. 붓을 들기 무섭게 역적 김익순의 죄상을 탄핵하는 병연의 필봉은 추상같이 준엄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려워 쩔쩔매고 답안지 작성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병연은 벌써 다 쓰고 나왔다. 오는 길에 주막집에앉 아서 술을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떠들며 들이 닥쳤다. "낙방했으니 홧김에 술이나 한 잔 하세 "백일장 결과가 발표되었습니까, 어떤 사람이 장원급제했습니까?" "뭐, 김병연이라고 하던가요 전연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장원을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오." 병연은 벌떡 일어났다. 빨리 집에 가서 어머니와 아내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아구,내 아들 아! 네 가 기어 코 장원을 해내고야 말 았구나. 세상에 이런 기쁜 일이어 디 있겠느냐." 옆에 있던 병연의 아내도기 쁨을 감추지 못해 싱글벙 글 웃으며 말했다. "여보, 서 울 가서 과거를 보면 틀림없이 장원급제할 거예요." "어머니, 오 늘 저는 운이 참 좋습니다. 제가 제 일 경멸하는 역적 김익순이에 대해서 쓰라는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옳다 너이 놈 잘 만났다 싶어 뼈도 못 추릴 만큼 신랄 하게 두들겨 팼습니다." "뭐, 김익순?..........." 그 말을 들은 어머니 이씨 부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에 쓰러져 버린다. 병연 내외는 기겁 을 하게 놀라며 얼굴에 물을 뿌리고 한참 동안 법석을 떨었다. 한참 후, 이씨 부인은 한숨을 쉬며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병연을 쏘아보며 대갈일성을 퍼부었다. "이놈 아, 선천 방어사 김익순 어른은 너의 조부님이시다. 너의 조부 님이 아무리 국가의 죄인이셨기로 조부님의 함자를 함부로 불러 던지는 후레자식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소 리란 말인가. "아니! 할아버지라니.........." "홍경래의 무리들이 들이 닥친 그 날 밤 너의 조부님은 술에 대취해 정신없이 주무시고 계시다가 어처구니없이 포로가 되셨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당시 정황을 참작하여 김익순만 참형에 처하고 삼족을 멸하지 말라는 특별 은총이 내렸다. 그때아 버지 김안근은 젊은 나이에 울화병으로 일찍 죽었다. 어머니 이씨는 자식들만 은 제대로 키우기 위해 황해도 곡산에 숨어살다가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이 들통 나자, 광주, 가평, 평창, 여주 등지로 전전하다가 영월 산 속으로 들어와서 살고있 었던 것이다. “아!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는 역적의 손자다. 조상에게조차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으니 무슨 낯짝으로 살아갈 것인가.” 병연은 죽고 싶은 충동이절 실하였다. 매일 자책과 통한으로 방황하였다. 그래서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워 한평생 삿 갓을 쓰기로 했다. 가족과의 인연과 모든 욕망을 포기해 버리고 속죄를 하기 위해 한 조각 구름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로 하였다. 김병연이란 이름도 버렸다. 자기 자신에게 내린가 혹한 형벌이었다.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한평생을 방랑객으로 유리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용이한일이 아닐지 모른다.그러나어떤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그길을 걸어가야만 한다고 병연은 마음을 굳게먹고 집을나온다
김병연(김삿갓)
내 삿갓 <詩>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詠笠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 ....그리해서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없는 시인이 되었다....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김삿갓 이야기>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인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집문당 발행 <방랑시인 김삿갓 시집> 참조.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김삿갓의 유적지 , 詩碑와 詩 사진보기
김삿갓유적비는 묘역 입구에 있고 입구부터 묘역까지 시비가 있다
묘역 입구의 장승들
기생 可憐(가련)을 처음 만날 때 쓴 시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가련의 나이는 스물.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기생 가련과 이별 시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무제/ 죽 한그릇
四脚松盤粥一盃 天光雲影共排徊 사각송반죽일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自詠 자영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한송고점리 고와별구인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근협운동락 임계조여린
稚銖寧荒志 詩酒自娛身 치수영황지 시주자오신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시와 술로 근심을 잊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풍류객의 모습을 그렸다.
스무나무 아래 (二十樹下 이십수하)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
看山 / 산을 구경하다
倦馬看山好 執鞭故不加 권마간산호 집편고불가 岩間재一路 煙處或三家 암간재일로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溪聲雨過耶 화색춘래의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奴曰夕陽斜 혼망오귀거 노왈석양사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했으니 산을 구경하기에는 빨리 달리는 말보다 게으른 말이 좋다는 것이다.
開城人逐客詩/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명천
김진사
백발여비김진사 아역청춘여옥인 주량점대황금진 세사제지백발신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 샘물을 떠 마시면거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쓴 시
虛言詩
靑山影裡鹿抱卵 白雲江邊蟹打尾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夕陽歸僧계三尺 樓上織女囊一斗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낭일두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불알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艱飮野店 / 주막에서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옆전 일곱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삿갓
멀리서 본 김삿갓 묘역
김삿갓 묘
김삿갓 계곡
묘소 앞 나루목
김삿갓 문학관 가는 다리
멀리 묘소 입구에서 본 문학관
문학관 전경
문학관 내부 조형물
정방 / 화장실
마대산 골짜기1
마대산 골짜기2
마대산
곰봉
지도보기
기타 詩들
1. 가련의 교태를 보고
사창에 임 안고 이 밤을 즐기는데 그 모습 수줍달까 애교롭달까
그토록 좋으냐고 속삭여 보니 금비녀 매 만지며 웃음으로 끄덕이네
對月紗窓弄未休 半含嬌態半含差 대월사창농미휴 반함교태반함차
低聲暗問相思否 手整金차笑点頭 저성암문상사부 수정금차소점두
* 금차 : 금비녀 , 차 는 金변에 叉
2. 가련을 향한 마음 / 難避花
젊은 나이에 그 대를 껴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이 밤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구름 같도다. 기러기는 먼 하늘을 날 때 물을 따르고 나비가 청산을 지나게 되니 꽃을 피하기 어렵도다.
靑春抱妓千金芥 今夜當樽萬事雲 청춘포기천금개 금야당준만사운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3. 가련과의 또 다른 이별시
새들은 한 가지에 잠을 자지만 밤이 새면 뿔뿔이 날아가 버린다 인생의 봉별도 이와 같으니 어쩌타 눈물흘려 옷을 적시리
衆烏同枝宿 天明客自飛 중오동지숙 천명객자비
人生亦如此 何必淚霑衣 인생역여차 하필누점의
4. 강원도 원산 근처의 한 서당에서
선생은 없고 못된 학동놈들이 김삿갓의 초라한 몰골을 보고는 비렁뱅이가 아니냐고 놀려대는 것이라. 이에 忿心이 일어 써 갈겨 놓고 떠났다는 시.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서당은 이에 내가 일찍이 알았는데 방안에는 잘난척 하는 놈들만 있네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생도는 모두 열명도 안 되는데 선생은 와 코빼기도 안 비치네
이는 아주 고약한 욕설로서 이를 발음대로 풀면 다음과 같이 된다 서당은 내 좆이고 방안은 개 좆물 같다 생도는 제미씹이고 선생은 내 불알이다
5. 街上初見 /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6. 元生員 / 원생원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7.磨石 / 맷돌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誰能山骨作圓圓 天以順還地自安 수능산골작원원 천이순환지자안
隱隱雷聲隨手去 四方飛雪落殘殘 은은뇌성수수거 사방비설낙잔잔
*돌로 만든 무생물체도 그가 노래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태어났다.
8.錢 / 돈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어디서나 환영받으니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불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복환래래복거 생능사사사능생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이 돈이니 당시에도 그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9. 落花吟 / 떨어진 꽃
새벽에 일어나 온 산이 붉은 걸 보고 놀랐네. 가랑비 속에 피었다 가랑비 속에 지네. 끝없이 살고 싶어 바위 위에도 달라붙고 가지를 차마 떠나지 못해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푸른 산에서 슬피 울다가 그치고 제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차다가 그저 올라가네. 번화한 봄날이 한차례 꿈같이 지나가자 머리 흰 성남의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효기번경만산홍 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 不忍辭枝倒上風 무단작의이점석 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全空 견월청산제홀파 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번화일도춘여몽 좌탄성남두백옹
*초목과 꽃이 풍성한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여 읊은 작품이다.
10 雪中寒梅 / 눈 속의 차가운 매화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 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 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11. 九月山峰
지난해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늘 구월일세.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12.金剛山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운의 반복으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높혔다.
13. 賞景 / 경치를 즐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히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一步二步三步立 山靑石白間間花 일보이보삼보립 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模此景 其於林下鳥聲何 약사화공모차경 기어림하조성하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방랑의 동반자요 거처가 되었으니 발길 닿은 산천경개는 모두 그의 노래가 되었다. 화가가 아름다운 봄의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 소리는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난고(蘭皐) 김삿갓 유적지 소개
개 요
김삿갓 유적지는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또한 김삿갓 유적지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쳐 흐르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곳이다. 특히 작년 여름에 가 보았는데 장마철이라 남한강의 상류는 물론 곡동천의 물도 수량이 많아 시원스러웠다
이처럼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다. 묘소가 있는 김삿갓 계곡에서 나오면 다리를 건너 멀리 문학관의 삿갓 지붕이 특이하게 보인다 문학관 주변은 잔디로 잘 가꾼 광장에 각종 모습으로 조각상과 자연석에 시를 새겨놓아 돌아볼 만하며 문학관내에는 관련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난고 김병연 선생은 원래 전라도 동복(지금의 전라도 화순군)에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하동면 노루목 바로 이 곳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선생의 노력으로 처 음으로 발견되었다.
강원도 시책사업인 『강원의 얼 선양사업』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추진되어 유적지내 조경 및 도로포장 등 기반시설이 조성되어 쾌적한 관광지로 탈바꿈 하였으며 특히, 2003년 10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개관되어 선생의 문학세계를 한 곳에 영구적으로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교육 효과를 거양하고 있다.
난고 김삿갓 생애
김병연(1807-1863; 순조7-철종14)은 선천의 부사였던 조부(祖父)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목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김병하와 함께 곡산(谷山)에 숨어 살았다. 그러나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걸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걸쳐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반역죄로 인한 죄는 거의 연좌죄로 처벌을 받아 가문의 3대를 멸족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이들 모자가 처벌되지 않았던 것은 당내 실권세력이 안동 김씨였기 때문에 이들 모자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이렇게 김병연의 모자는 목슴을 연명할 수 있었으나 떳떳한 사대부로 지낼 수 없는 실정이였다. 명색이 반역죄로 조부인 김익순이 능지처사를 당하였고 집안이 폐적을 당했기 때문이다. 문중에서 거의 추방된 이들 모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산 속 깊은 곳에서 권문세족임을 밝힐 수 없이 살아가야 했다. 영월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곳을 택하여 생활하면서 班家의 기풍과 안목을 갖춘 김병연의 어머니 함평 이씨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채 학업에만 정진을 하여 온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牛天" 이라는 시제아래 장원급제를 하였다.
위와 같이 뛰어난 글 솜씨로 장원을 하게 된 난고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내역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 하여 삿갓에 죽장(竹杖)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 해 동안 훈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전라도 동복땅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明月若使陽來弔 家家詹前漏滴滴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천황씨가 죽었는가 인황씨가 죽었는가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산과 나무 천하가 모두 상복을 입었구나 明月若使陽來弔(명월약사양래조) 해님이 소식을 듣고 내일 문상을 오면 家家詹前漏滴滴(가가첨전루적적) 집집마다 처마끝에 눈물을 흘리리라
= 해설 = 소리없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온 산과 나무, 천지가 하얀데 그 하얗고 아름다운 경치를 김삿갓은 마치 나라의 임금이 죽어 산천 초목이 상복을 입은 것으로 비유하였다. 또한 눈이내린 뒤 햇살이 비치면 눈이 녹아내려 고드름으로 변하여 처마 밑에 열리는 고드름을 아름답게 노래한 , 마음 푸근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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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산(佛)
북망산 멀다하나 코앞이 저승이네 망할놈 이내청춘 왜이리 빨리가노 산허리 밭줄감아서 이내청춘 묶으랴, 북소리 들리더니 이내몸 타버리고 亡이름 적어놓고 곡소리 낭자한데 산놈은 지부책펴고 돈챙기기 바쁘네,
청산루
청산을 벗을삼아 조용히 살고보니 천상에 사는이도 부럽지 아니하네 루비에 금은보화도 소용없네 산중엔. 고행하지 말라하네 정신나간 놈들이요 장부에뜻 심었으면 고행당연 하건마는 난세말법 시대에는 공부하기 힘이드네 명확하게 할려거든 경을의지 하여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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