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휴계실 ★ 김용임-이별의 부산정거장 영월🏕김삿갓부동산 2009. 8. 23. 21:56 이별의 부산정거장 1.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離別) 슬픈 부산정거장(釜山停車場).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汽笛)이 운다. 한(恨) 많은 피난(避亂)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요, 경상도(慶尙道)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2. 서울 가는 십이열차(十二列車)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窓) 밖의 등불이 존다. 쓰라린 피난(避難=避亂)살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純情) 때문에 기적(汽笛)도 목이 메어 소리높이 우는구나, 이별의 부산정거장.3.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유리창(瑠璃窓)에 그려 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 고향(故鄕)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 한두 자(字) 봄 소식(消息)을 전(傳)해 주소서. 몸부림치는 몸을 뿌리치고 떠나가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0년대의 영도섬과 영도다리, 그리고 부산시청 언저리 옛 부산 제5육군병원과 부산시청, 그리고 바다 건너 영도 1950대 부산항,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판잣집들이 이채롭다. 1950년 무렵의 미국 공보관 (그 뒤 미 문화원으로 바뀌고 그 유명한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의 현장이다). 1950년 무렵 부산 곳곳에 비온 뒤 죽순처럼 돋아났던 피난민들의 보금자리인 판잣집과 천막들. 한국 전쟁 무렵의 부산역으로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부산 역사(驛舍)는 1953년 부산역 대화재로 역사에서 까마득히 사라져 버렸다. 전쟁이 났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부산이라는 조그만 항구 도시에 모두 모여 살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몇 년을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전쟁이 끝났다. 부산정거장(지금의 부산역이겠지만)에서는 하루에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찾아, 연인을 찾아, 아내를 찾아, 자식을 찾아, 친구를 찾아 기차를 탔고, 그들을 배웅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부산정거장에 가득가득 찼다. 부산정거장은 그렇게 기나긴 시간동안 수 많은 사연들로 울렁울렁 넘쳐나는 눈물과 기대, 원망과 미안함,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되는 50년대의 가장 극적인 장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의 반주는 기차가 서서히 떠나가며 내는 기적 소리, 바퀴 소리를 상징한